인도·유럽어족 이야기 ④ 베다와 아베스타 : 인도·이란어파

앞선 포스팅들에서 인도·유럽어족의 대표적 고전어인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나왔으니, 이번엔 인도·유럽어족 개념을 탄생시킨 또 다른 고전어, 산스크리트어를 소개할 차례입니다. 유럽의 두 고전어와 산스크리트어는 옛 인도유럽어의 복잡한 굴절 체계를 상당 부분 보존하고 있고, 종교적인 권위도 지니는 등 비슷한 점이 많지만, 다른 점도 있습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가장 예전 모습은 비문 등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반면, 산스크리트어는 구전 전통이 아주 강했습니다. 그래서 문자로 기록되기 훨씬 전부터 신화와 경전 등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암기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역사언어학적으로는 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는 사템 계열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인도·유럽어의 두 갈래 갈림길 : 켄툼과 사템

사템 계열이 무엇일까요? 알바니아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인도·유럽 조어에는 혓바닥소리dorsal에 세 가지 종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조어에서 어떤 말소리를 사용했는지는 실제로 알 수 없으므로, 자료가 남아 있는 후손 언어들을 통해 추측한 결과입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수사를 예로 들어 봅시다. 숫자 ‘4’, ‘5’, ‘6’은 각각 라틴어로 quattuor /attuor/, quīnque /iːne/, sex /seks/, 그리스어로 τέσσαρες /téssares/, πέντε /pénte/ ἕξ /héks/입니다. 언뜻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자음만 대충 비교해 보면, 우선 고전 그리스어의 -ss-는 여러 방언에서 -tt-로 나타납니다. 또 그리스어 어두의 h는 대부분 *s가 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라틴어의 kʷ입니다.

라틴어 kʷ가 그리스어 t에 대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 quīnque의 첫 번째 kʷ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영어로 ‘5’가 five이고, 게르만어의 f는 *p가 변한 것임을 기억한다면, 인도·유럽 조어의 ‘5’ 역시 *p-로 시작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인도·유럽 조어의 재구형을 공개하겠습니다. 순서대로 *etwóres, *péne, *swéks입니다. 인도·유럽 조어 시기에도 라틴어처럼 입술을 둥글게 해서 발음하는 kʷ가 그렇지 않은 평범한 k와 구분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혓바닥소리의 두 계열, 연구개음velar과 순·연구개음labio-velar이 밝혀졌습니다. 여기에 산스크리트어를 추가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산스크리트어로 ‘4’, ‘5’, ‘6’은 각각 चतुर् /cátur/, पञ्चन् /páñcan/, षष् /ṣá/입니다. *kʷ는 c와 규칙적으로 대응하지만, *sweks의 *k는 어디로 가고 ṣ가 나타난 걸까요? 마찬가지 현상은 ‘100’에서도 나타납니다. ‘100’은 라틴어로 centum /kentum/, 그리스어로 ἑκατόν /hekatón/, 산스크리트어로 शत /śatá/인데, 여기에서도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k가 경구개 마찰음인 ś에 대응됩니다. 역사언어학자들은 세 번째 혓바닥소리 계열, 경구개음palatal *kʲ(인도·유럽어학에서는 ḱ로 표기)를 상정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경구개 파열음이 마찰음이 되는 사례는 흔하거든요. 모든 인도·유럽어는 이 경구개음이 연구개음과 합쳐졌는지, 아니면 마찰음화spirantization되었는지에 따라 두 계열로 나뉘는 것입니다. 인도·유럽 조어에는 폐쇄자음에 삼중 대립도 있었으니,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켄툼’ 계열에서 무성음 유성무기음 유성유기음 조음 위치 ‘사템’ 계열에서
*kʷ *gʷ *gʷʰ 순·연구개음 합류
합류 *k *g *gʰ 연구개음
*ḱ *ǵʰ 경구개음 마찰음화

라틴어가 속한 이탈리아어파, 그리스어가 속한 헬라어파, *kʷ가 p 또는 k로 분화한 켈트어파는 모두 ‘켄툼’ 계열에 속합니다. 켄툼이라는 이름은 위에서 언급했듯 라틴어로 ‘100’이라는 뜻입니다. 인도·유럽 조어에서 ‘100’은 문제의 경구개음으로 시작하는 *ḱm̥tóm이기 때문에, 각 언어에서 ‘100’이 어떤 자음으로 시작하느냐에 따라 ‘켄툼’ 계열인지 ‘사템’ 계열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템’이라는 이름은 사템 계열에 속하는 인도·이란어파Indo-Iranian의 아베스타어Avestan로 ‘100’이라는 뜻입니다.) 산스크리트어 역시 인도·이란어파에 속하는 사템 언어입니다. 사템 계열에 속하는 다른 분파로는 발트·슬라브어파가 있습니다. 게르만어파는 *k가 *x로 마찰음화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켄툼 계열에 속합니다. 알바니아어와 아르메니아어는 애매한 경우이지만, 보통은 각각 켄툼과 사템 언어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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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툼 계열(파랑)과 사템 계열(빨강) 분파들의 원래 지리적 분포. 발칸 반도를 기준으로 켄툼어는 서쪽, 사템어는 동쪽으로 퍼져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켄툼과 사템은 오랫동안 인도·유럽 조어가 처음 갈라진 지점이라고 여겨져 왔습니다. 각 계열이 단순히 말소리의 변화뿐 아니라 몇 가지 다른 특징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지리적으로 켄툼 언어들의 기원지는 동유럽을 제외한 유럽 지역, 사템어는 동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걸쳐 있습니다. 사템 언어들은 또한 루키 법칙ruki rule이라는 소리 변화를 대부분 겪었습니다. 그런데 위 지도를 자세히 봤다면 뭔가를 지운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후의 발견들로 인해 켄툼과 사템이라는 계통 분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가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다룰 것입니다.

‘고결한’ 산스크리트와 ‘투박한’ 프라크리트

언어의 이름은 어떻게 정할까요? 보통은 ‘한국어’나 ‘아랍어’처럼 해당 언어가 기원한 국가나 지역 혹은 민족의 이름을 따서 지을 것입니다. ‘게일어’처럼 언어 자체에 이름이 있는 경우도 있고, 가끔은 호주의 ‘서부 사막 언어’처럼 순전히 지리적으로 지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산스크리트어는 산스크리트 사람들이 산스크리트 지역에서 쓰는 말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산스크리트’, 산스크리트어로 संस्कृतम् saṃskṛtam은 ‘세련된, 꾸며진, 정교한’이라는 형용사에서 나왔습니다. 산스크리트어가 ‘세련되고 정교하게 꾸며진 말’이라면 그렇지 않은 말도 있다는 것일까요?

물론입니다. प्राकृत /prākṛta/ ‘본래의, 꾸밈없는’이라는 형용사에서 나온 ‘프라크리트’가 있습니다. 하지만 산스크리트어와 달리 프라크리트는 단일 언어가 아닙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양층언어 현상diglossia을 알아야 합니다. 양층언어 현상은 하나의 사회에서 계급, 신분, 계층에 따라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 역사에서 찾자면 일제 강점기에 지배층과 공식적 상황에서는 일본어를, 피지배층과 일상적 상황에서는 한국어를 주로 사용한 것과 비슷합니다. 인도에는 고대부터 카스트 제도라는 엄격한 신분 질서가 존재했습니다. 가장 높은 카스트는 사제 계급이었고, 이들은 산스크리트어로 된 고대 경전들을 정확히 암송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한편 산스크리트어와 같은 언어로 출발했지만 일상에서 쓰이던 언어는 계속해서 변화했고, 지역별로도 분화를 이어나갔습니다. 결국 산스크리트어가 종교 의례에만 쓰이게 된 시점부터는 프라크리트 언어들이 사회 전체의 일상언어가 된 것입니다.

훨씬 이전에는 산스크리트어가 일상 언어였을 것입니다. 사실 산스크리트는 프라크리트와 대비되는 개념이므로 고대 인도어Old Indic가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이때의 언어는 인도 최초의 경전 리그베다Rig-Veda를 서술(문자가 없을 시절이니 구술이 맞겠네요)하는 데 쓰였기 때문에 베다 산스크리트어Vedic Sanskrit라고도 부릅니다. 또 이 언어를 원래 사용하던 인도·유럽인은 기원전 1800년경부터 인도로 이주해온 집단입니다. 당시 인더스 강 유역에는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지 알려지지 않은 하라파 문명이 존재했는데, 인도·유럽인 집단은 차츰 이들을 밀어내고 북인도 지역의 지배 세력이 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아리아, आर्यम् /āryam/ ‘고귀한’ 사람들이라고 불렀고, 그래서 고대 인도어와 그 후손 언어들을 인도·아리아어파Indo-Aryan languages로 분류합니다. 과거 나치의 잘못된 생각과는 달리, 인도·아리아인은 인종보다는 언어와 종교 등이 동질적인 집단이었다고 합니다.

언어는 항상 변화합니다. 그러나 과거를 간직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말을 고정시킴으로써 전통을 지키려고 합니다. 파니니Pāṇini 역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재능이 있었다는 점만 빼면요. 기원전 4-6세기 사람으로 추정되는 파니니는 아득한 옛적부터 전해 내려오던 산스크리트어 문법을 3,959개의 규칙으로 정리해 ‘아슈타댜디’라는 문법서를 편찬했습니다. 아니, 문자 기록이 된 건 훨씬 뒤의 일이고 이걸 통째로 암송했습니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데, 그의 문법 기술은 체계적인 분석과 형식화된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어, 근현대의 위대한 언어학자들에게까지 많은 영향을 끼칠 정도였습니다. 파니니가 집대성한 산스크리트어는 고전 산스크리트어Classical Sanskrit로 베다어와 별도로 분류합니다.

산스크리트어는 고전어 중에서도 복잡성으로는 가히 최고봉입니다. 먼저 산스크리트어의 말소리는 아름답기까지 한 체계를 보여줍니다. 다섯 가지 조음 위치에 대해 각각 비음과 파열음이 존재하며, 각 파열음은 인도·유럽 조어의 3중 대립에 무성유기음이 추가되어 p : pʰ : b : bʱ의 4중 대립을 보입니다! 유성 유기 권설 파열음 /ɖʱ/는 따라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모음에는 장단이 존재하며, 성절자음syllabic consonant으로도 쓰이는 r과 l 역시장단 대립이 있습니다. 또한 인도·유럽 조어의 음조 액센트를 위치까지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형태소나 단어 경계에서 일어나는 소리의 변화를 의미하는 산디sandhi는 아예 산스크리트어 문법 용어에서 빌려온 말입니다. 동사는 열 가지 시·상·법TAM 범주와 주어의 인칭과 수에 따라 굴절하며, 부정사와 분사, 사동형causative, 희구형desiderative, 강조형intensive, 수동태 등등 모든 조합을 세면 한 동사가 수천 가지 형태를 갖습니다.  명사는 독일어처럼 길게 이어붙이는 합성어를 많이 사용했고, 곡용 또한 3성 단/쌍/복수 체계에 8개의 격에 따릅니다. 이 덕분에 산스크리트어의 어순은 매우 자유롭지만, 기본 어순은 ‘주어가 목적어를 동사한다’였고 지금도 많은 인도·아리아어가 이 어순을 지키고 있습니다.

한편 일상 구어는 프라크리트, 즉 중대 인도·아리아어Middle Indo-Aryan languages들로 제각기 발전해 나갔습니다. 대표적인 프라크리트어는 상좌부 불교 경전이 쓰인 팔리어Pali가 있습니다. 중대 인도·아리아어는 이후 현대 인도·아리아어Modern Indo-Aryan languages들이 되었습니다. 영어와 함께 인도의 공용어인 힌디어Hindi와 파키스탄의 공용어인 우르두어Urdu가 가장 대표격입니다. 사실 이 두 언어는 각각 데바나가리 문자Devanagari와 아랍 문자를 변용한 우르두 문자를 쓰고, 우르두어에는 페르시아어와 아랍어 차용어가 더 많지만, 언어학적으로는 힌두스탄어Hindustani라는 하나의 언어로 분류됩니다. 힌두스탄어 외에도 인도의 엄청난 면적과 인구 덕에 수많은 크고 작은 현대 인도·아리아어들이 존재합니다.

인도 각 지역에서 쓰이는 카슈미르어Kashmiri, 펀자브어Punjabi, 란다어Lahnda, 신디어Sindhi, 라자스탄어Rajasthani, 구자라트어Gujarati, 보즈푸리어Bhojpuri, 마이틸어Maithili, 오디아어Odia, 벵골어Bengali, 아삼어Assamese, 마라티어Marathi와 네팔의 네팔어Nepali, 스리랑카의 신할라어Sinhalese 및 이 언어들의 수많은 방언과 자매 언어들도 모두 인도·아리아어파의 구성원들입니다. 이에 더해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사용되는 도마리어Domari와 유럽 각지에서 쓰이는 로마니어Romani 등 인도·아리아계 유랑민들의 언어도 포함됩니다. 로마니어는 기원지인 인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언어인데도 중대 인도·아리아어의 동사 어미 같은 특징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는 보수적인 언어입니다. 반면 힌두스탄어에서는 분열 능격성split ergativity이 나타나는 등, 본토의 인도어들에는 옛 인도어에 없던 특질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다리우스 대왕과 아후라 마즈다

인도·아리아어파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이란 지역의 언어들과 계통적으로 연관이 있습니다. 발트·슬라브어파처럼 이들을 한데 묶어 인도·이란어파라고 부릅니다. 인도·이란어파는 사실 이란어파Iranian languages 외에도 누리스탄어파Nuristani languages라는 하나의 분파가 더 소속되어 있습니다. 총 화자 수가 13만 명 정도이고, 사용 지역도 아프가니스탄의 누리스탄 주를 중심으로 한 작은 영역이라, 인도·아리아어파나 이란어파에 비하면 매우 작은 분파입니다. 게다가 기록이 된 것도 20세기가 되고 나서였습니다. 그렇지만 루키 법칙이 u에는 적용되지 않는 등의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독립된 어파로 인정받았습니다.

이에 비해 이란어파는 산스크리트어가 이끄는 인도·아리아어파에 뒤지지 않을 만큼 오래된 기록 전통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그리스를 침략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멸망한 대제국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Achaemenid Persia의 언어, 고대 페르시아어Old Persian입니다. 아케메네스조의 최전성기는 다리우스 대왕이 다스리던 때로, 페르시스 지방의 소국으로 시작한 페르시아가 서아시아 대부분과 발칸 반도 일부, 이집트까지 지배한 시기였습니다. 정복 사업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으니 자랑할 법도 합니다. 까마득하게 높은 절벽의 바위면에 무려 세 가지 언어로 자신의 업적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베히스툰 비문Behistun Inscription이라는 유적입니다.

베히스툰 비문에는 당시의 주요 언어였던 바빌로니아어Babylonian(아프리카·아시아어족 셈어파), 엘람어Elamite(지금의 이란 지역에서 쓰이던 고립어), 고대 페르시아어가 쐐기 문자cuneiform들로 적혀 있습니다.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다르야우스(다리우스), 위대한 왕, 왕 중의 왕, 파르사(페르시아)의 왕, 여러 나라들의 왕,  위슈타스파의 아들, 아르샤마의 손자, 하하마니시(아케메네스) 가문 사람이다.” 그런데 다리우스 대왕은 승리의 영광을 자꾸 다른 이의 덕으로 돌립니다. 마지막 줄에서도 “아우라마즈다를 섬기는 자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신의 은총이 있으리라.”라며, 자기 자랑으로 시작해 ‘아우라마즈다’ 찬양으로 끝납니다. 비문에서 76번이나 등장하는 ‘아우라마즈다’는 대체 누구일까요?

‘아우라마즈다’, 아베스타어로 아후라 마즈다는 ‘지혜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아니고,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라는 고대 이란의 종교의 최고신입니다. 그리고 이 종교의 경전이 아베스타Avestan, 이를 기록한 고대 이란어Old Iranian languages가 바로 아베스타어입니다. 아베스타어는 베다 산스크리트어와 갈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꽤 가까운 언어였습니다. 재미있게도 ‘아후라’는 산스크리트어 ‘아수라’와 뿌리가 같지만, 그 뜻은 ‘아수라장’에서 보듯 정반대입니다. 또 산스크리트어로 ‘데바’는 신적인 존재를 뜻하지만(그리스의 제우스와 어원이 같습니다), 아베스타어로 ‘다에와’는 악마라는 뜻입니다. 어쩌면 인도·이란인들이 종교적 이유로 서로 다투고 갈라선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베스타어는 이후 사산조 페르시아Sassanid Persia에서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음에 따라 전례 언어로서 유지되었지만, 일상 언어로 쓰이는 후손은 남기지 못했습니다. 반면 고대 페르시아어는 사산조의 공용어인 중대 페르시아어Middle Persian로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쌍수와 성 구분, 복잡한 격 변화는 모두 사라졌고, 전치사와 에저페Ezāfe가 명사의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게 되었습니다. 에저페는 독특하게도 수식받는 명사에 소유 표지가 붙는 핵어 표시head-marking 현상입니다. 고대 페르시아어에서는 수식하는 명사가 속격(소유격) 형태를 취한 것과 대조적이죠. 중대 페르시아어는 근세 페르시아어New Persian로 발전했고, 오늘날에는 이란의 서부 페르시아어Western Persian, 아프가니스탄의 다리어Dari,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타지크어Tajik라는 세 가지 표준형이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페르시아어는 이란어파의 1/4에 해당할 뿐입니다. 페르시아어는 서이란어군Western Iranian languages, 그 중에서도 남서이란어Southwestern Iranian에 속합니다. 북서이란어에는 중동의 나라 없는 민족 쿠르드인이 사용하는 쿠르드어Kurdish와 발루치스탄 지역의 발루치인이 사용하는 발루치어Balochi 등이 있습니다. 한편 아베스타어는 동이란어군Eastern Iranian languages의 초기 멤버입니다. 지금은 사멸한 다른 동이란어군 언어들로는 주로 중앙아시아의 유목 민족들이 사용하던 스키타이어Scythian, 박트리아어Bactrian, 소그드어Sogdian 등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또 다른 공용어인 파슈토어Pashto와 캅카스 지역의 오세티아어Ossetian가 동이란어군의 현존하는 주요 언어들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현대에 후손을 남기지 못한 아시아의 다른 인도·유럽어들을 만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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